한국스포츠의 전설을 만나봅니다.
'슛도사' 하면 떠오르는 인물, 네 바로 이충희 전 동부 감독이죠.
눈 감고도 골을 넣었다는 그 시절로 되돌아가봅니다.
'나때는 말이야' 이민준 기자입니다.
[리포트]
80~90년대 겨울스포츠의 꽃이었던 농구대잔치.
"이충희 슛! 골인했습니다."
"나 때는 말이야 슛 하면 이충희였어."
이충희는 농구대잔치 6년 득점왕, MVP 3번에 빛나는 스타였습니다.
[이충희 / 전 농구선수]
"기사가 이렇게 났었어요. '농구의 조용필' 이렇게 해가지고. 오빠부대가 그때 생긴 거예요. 제가 원조예요."
하지만 한때는 농구부 입단조차 쉽지 않았습니다.
[이충희 / 전 농구선수]
"안 믿으실 것 같은데, (중학교 때) 소질 없다고 3번까지 그냥 쫓겨났었어요."
150cm 정도의 작은 키에 살길은 슈팅뿐이었습니다.
매일 같이 1000골 넣기 연습을 했습니다.
눈을 감고도 골을 넣을 정도로 감을 익혔습니다.
[이충희 / 전 농구선수]
"6개월 정도 지나니까 정말 링이 이렇게 늘어나는 게 보여요. 링이 (크게) 보이니까 다른 선수보다 얼마나 쉽게 넣겠어요."
현대전자 소속이던 1987년 이충희는 명지대를 상대로 혼자서 64점을 넣었습니다.
이 기록은 24년간 깨지지 않았습니다.
이충희의 실력은 국제무대에서도 통했습니다.
"내가 페이드어웨이란 슛을 쏘잖아요?
마이클 조던이 그렇게 하잖아요. 내가 먼저 했다니까?"
이충희는 자신보다 20cm 큰 구소련 국가대표를 앞에 두고 32점을 넣기도 했습니다.
선수, 감독을 거치고 이젠 제주도로 떠나 있는 이충희.
그러나 마음만은 언제나 농구코트 위에 있습니다.
"(농구를 했기에) 은퇴하고 있어도 다 알아봐 주시고, 나의 인생은 농구가 아니라, 나 자체 (농구)라고 봐요."
채널A 뉴스 이민준입니다.
2minjun@donga.com
영상취재 : 김영수
영상편집 : 이능희